"아이들 자는 모습 보고 집을 나섰는데…"
서울 은평구 갈현동 한 빌라에서 발생한 화재로 초등학생 남매를 동시에 잃은 아버지 조모(35)씨가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힘겹게 말을 이어가던 그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조씨는 "아이들은 또래보다 훨씬 밝고 순수한 성격이었다"며 "서로를 의지하면서 정말 사이좋게 지냈다"고 회상했다.
화재 발생 다음 날인 9일, 은평구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는 깊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남매의 부모는 말없이 영정사진만 바라보며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 속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브이(V)를 그리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조씨는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는 생각뿐"이라며 울먹였다.
외할머니 역시 믿기 어려운 현실에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집이 가까워 한 달에 두세 번은 꼭 만났고, 지난달에는 함께 진도로 2박 3일 여행도 다녀왔다"며 "몇 주 전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키즈카페에 가고 장도 함께 봤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고 말을 잇지 못했다.
남매는 평소에도 서로를 각별히 아끼는 사이였다고 유족들은 전했다. 오빠는 동생이 좋아하는 초콜릿을 늘 챙겨줬고, 동생은 오빠가 좋아하는 딸기를 남겨둘 만큼 서로를 배려했다고 한다. 유족의 지인 A씨는 "첫째는 외모가 뛰어나 여러 차례 키즈 모델 제안을 받을 정도였다"며 "너무 착하고 순한 아이들이어서 안타까운 마음뿐"이라고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불은 전날 오후 11시께 42가구가 거주하는 빌라에서 발생했다. '펑' 하는 폭발음이 들렸다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은 소방대원 82명과 장비 23대를 투입해 약 50분 만에 화재를 진압했다. 당시 3층 집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남매는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해당 빌라는 준공된 지 약 40년이 지난 노후 건물로 스프링클러는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남매 가족은 약 2년 전 이곳으로 이사해 생활해왔다.
화재 발생 12시간이 지난 이날 오후에도 사고 현장에는 탄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검게 그을린 빌라 앞에는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모두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인근 주민 B씨는 "밤 11시가 조금 지나 딸이 방에서 탄 냄새가 난다고 해서 밖으로 나와 보니 골목이 소방차로 가득했다"며 "아이들을 들것에 옮겨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빌라 맞은편에 거주하는 원모(70)씨도 "갑자기 큰 폭발음이 들려 밖을 내다보니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며 "직접 말을 나눈 적은 없지만 동네를 오가는 아이들을 종종 봤는데 이런 비극이 벌어져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25년 동안 인근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해 온 김문옥(64)씨 역시 "건물이 오래돼 평소에도 걱정이 많았는데 결국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며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느냐. 그저 안타까울 뿐"이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전했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날 오후 1시부터 합동감식을 실시해 정확한 화재 원인과 피해 규모를 조사했다. 현재까지는 전기적 요인에 의한 화재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에어컨과 선풍기 등이 설치돼 있던 거실을 중심으로 최초 발화 지점을 집중 감식하고 있다. 경찰은 "현재까지 외부 범죄와 관련된 정황이나 특이점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