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드라마 한 편을 보려다 돈만 날리는 피해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여러 명이 구독료를 나눠 부담하는 OTT 공동구독, 이른바 '분철' 서비스를 미끼로 삼은 신종 사기가 확산하면서 피해자가 수백 명 규모로 불어나고 있다. 처음 수개월간은 정상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구매자의 경계심을 허문 뒤 돌연 잠적하는 수법이라 피해를 인지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는 점에서 더욱 교묘하다.

지난 1월 손모(19) 양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올라온 '애플뮤직 가족계정 파티원 모집' 게시물을 발견했다. 친언니와 함께 사용할 2인 기준 1년 이용료로 5만4000원을 판매자 김모 씨에게 송금했고, 처음 두 달간은 아무런 문제 없이 서비스를 이용했다. 그러나 3월부터 갑자기 계정 접속이 막혔고, 판매자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손양은 "두 달 동안 멀쩡히 잘 됐기 때문에 사기라는 생각을 전혀 못 했다"며 "나중에 피해자 단체 채팅방에 들어가 보니 같은 판매자에게 당한 사람만 44명이었다"고 전했다.

'분철'은 원래 문서나 책을 나눠 제본한다는 뜻이지만, 최근에는 OTT나 음원 스트리밍 구독료를 여럿이 나눠 부담하는 공동 이용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굳어졌다. '파티원 모집'이라는 표현도 같은 의미로 통용된다.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플러스, 왓챠, 밀리의서재, 애플뮤직 등 구독해야 할 플랫폼이 늘어나면서 월정액 부담이 커진 소비자들이 저렴한 공동구독으로 눈을 돌렸고, '참교육', '김부장' 같은 화제작이 OTT를 통해 공개되면서 이 수요는 더욱 가파르게 증가했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5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 OTT 이용률은 89.1%에 달했으며, 이용자들은 평균 2.1개의 서비스를 동시에 구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료 구독자의 월평균 지출액은 1만909원이었고, 할인이나 제휴 혜택을 활용한 이른바 '가성비 구독' 비율은 64.7%에 달했다. 여러 플랫폼을 합리적인 비용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소비자 심리가 사기의 온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거래 방식은 단순하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엑스나 중고거래 플랫폼에 올라온 모집 글을 보고 '방장' 역할의 판매자에게 구독료를 송금한 뒤 계정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전달받는다. 문제는 사기범들이 단순히 처음부터 사기를 치는 것이 아니라 초반에는 실제 서비스를 제공하며 신뢰를 쌓는다는 점이다. 1년 이용권 상품의 경우 수개월간 정상적으로 계정을 운영한 뒤 잠적하는 방식을 쓰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사기임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기범들의 신뢰 공작도 갈수록 치밀해지고 있다. "이 금액으로 사기를 치겠느냐", "사기라면 더치트에 신고하면 된다"며 구매자를 안심시키는 것은 기본이고, 본인 명의 휴대전화 번호와 계좌번호를 당당히 공개하며 믿음을 주기도 한다. 피해자 정모(28) 씨는 "판매자가 '3년간 운영한 파티'라며 기존 이용자들의 후기 사진까지 보여줬다"며 "나중에 확인해보니 다른 사람에게서 가져온 사진을 그대로 도용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계정이 갑자기 끊기고 항의가 쏟아져도 판매자들은 각종 핑계로 시간을 끌었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1년 이용권을 14만 원에 구매했던 20대 김모 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이용하다 올해 4월에 갑자기 계정이 차단됐다"며 "항의하자 판매자가 병원 입원 사진까지 보내왔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였고 나중에는 여러 피해자에게 똑같은 사진을 돌려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범행 수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거래 내역을 취합해보니 동일한 판매자가 여러 개의 계좌를 돌려 쓰며 새 피티원을 지속적으로 모집한 정황이 드러났다. 애플뮤직 이용권을 구매했다가 피해를 입은 강모(23) 씨는 "피해자들이 거래 기록을 모아보니 같은 명의로 된 계좌가 6개나 확인됐다"고 말했다. 손양과 김씨의 판매자도 각각 4개의 계좌를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규 피해자의 돈으로 기존 피해자에게 환불해주는 '돌려막기' 수법도 동원됐다. 피해자 양모(25) 씨는 "판매자가 새로 받은 구독료를 기존 피해자 환불금으로 쓰도록 유도했다"며 "환불을 받은 사람은 해결됐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피해자의 돈이 들어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형적인 폰지 구조를 OTT 사기에 접목한 셈이다.

피해자들은 온라인 카페와 단체 채팅방을 개설해 판매자 정보와 신고 진행 상황을 서로 공유하며 대응에 나서고 있다. 현재 참가자는 500명을 훌쩍 넘어선 상태다. 그러나 개인 피해액이 대부분 2만~10만 원 수준인 소액이라는 점이 법적 대응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손양은 "미성년자라 신고 절차 자체가 복잡하게 느껴졌고 피해 금액도 크지 않아 그냥 넘어갔다"고 털어놓았다. 김씨 역시 "사이버범죄 신고 시스템(ECRM)에 접수한 뒤에도 경찰서를 직접 방문해 서류를 출력해 제출해야 했고, 소액 사건이라 피해금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양태정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개인 피해액이 수만 원 수준이면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직접 고소를 진행하기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도 "피해자가 수백 명에 달한다면 전체 피해 규모는 결코 적지 않다"고 짚었다. 염건웅 유원대학교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도 "피해자 입장에서는 금전 손실보다 신고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스트레스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며 "그러나 신고 사례가 쌓여야 경찰도 피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OTT 계정 공유 자체가 플랫폼 약관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도 피해자들의 신고를 망설이게 만드는 요인이다. 넷플릭스는 동일 가구 내 구성원 간 공유만 허용하며, 별도 거주자와 계정을 함께 쓰려면 월 4000~5000원의 추가 비용을 내고 '추가 회원'으로 등록해야 한다. 염 교수는 "사기범들이 피해자들의 이 같은 심리적 부담을 의도적으로 악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약관 위반이 찜찜해 신고를 포기하는 피해자가 생길수록 사기범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활동하기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지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