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BTS) 뷔(김태형)가 지난 3월 광화문 복귀 무대에서 착용한 옥반지와 드라마 '멋진 신세계'에서 배우 임지연이 선보인 옥 장신구 스타일링이 온라인에서 화제를 모으면서, MZ세대를 중심으로 이른바 '옥코어(Jade Core)' 열풍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복고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패션 트렌드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옥 장신구를 찾는 소비자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는 분위기다.
그런데 MZ세대가 새로운 감각으로 즐기고 있는 '옥코어'의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깊은 곳에 닿아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옥은 약 5000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사용되어 온 유서 깊은 장신구이자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전해진다.
옥은 시대마다 다른 의미를 품으며 사람들의 삶 가까이에 있었다. 초기에는 주술적 기능을 지닌 장식품이나 의례용 도구로 쓰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과 신분을 상징하는 귀중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혼인을 앞둔 딸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며 어머니가 쥐여 주던 패물이기도 했고, 먼 바다 건너 해외 교역을 통해 유입된 귀한 재료를 활용한 국제 문화교류의 산물이기도 했다.
보물로 지정된 '경주 황남동 상감 유리구슬'은 당시 옥 문화의 수준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 유물이다. 경주 황남동 신라 미추왕릉에서 출토된 이 목걸이는 길이 24㎝ 규모로, 지름 1.8㎝의 상감유리옥 여러 개를 이어 완성됐다. 약 8종류의 옥이 사용됐으며, 작은 유리구슬 표면에는 녹색 수초 사이를 헤엄치는 오리 16마리와 두 사람의 얼굴이 다채로운 색상을 활용한 정교한 상감기법으로 표현되어 뛰어난 예술성을 자랑한다. 천수백 년 전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이 작은 구슬 하나가, 오늘날의 어떤 장신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세밀함을 품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벽옥, 수정, 홍옥수, 천하석 같은 광물뿐 아니라 호박이나 유리처럼 광물이 아닌 재료로 만든 장식품과 구슬까지 폭넓게 '옥'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변질되지 않는 성질과 은은한 색감, 그리고 희소성을 두루 갖춘 옥은 오랜 세월 귀한 재료로 인정받아 왔으며, 지금까지 전해지는 고대 장신구 유물 가운데서도 목걸이, 귀걸이, 팔찌, 반지 등 다양한 형태의 옥 장신구가 가장 많이 확인되는 재료 중 하나다.
우리나라에서 옥의 사용은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무덤에서 둥근 귀걸이 형태인 '결상이식'이 출토되며 초기 옥 문화의 흔적이 확인된다.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서 옥은 무기와 함께 권력과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부장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고인돌을 비롯한 무덤에서는 간돌검, 청동검과 함께 옥이 발견되는 사례가 많으며, 청동기 후기에는 천하석을 활용한 전문적인 옥 생산까지 이뤄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철기시대에는 청동검, 청동거울, 옥을 함께 매장하는 문화가 더욱 확산됐다. 학계에서는 무기가 권력을, 거울이 주술성을 상징했다면 옥은 장식적 가치와 함께 액운을 막고 신성함을 나타내는 의미를 지녔던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시기에는 해외에서 유리구슬이 유입되며 옥 문화도 한층 다채로워졌다.
중국 진나라 시대 학자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에는 마한 사람들이 금과 은, 비단보다 옥을 더 귀하게 여겼다는 기록이 전한다. 당시 사람들은 옥으로 만든 구슬을 옷에 달거나 목과 귀에 걸어 장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천 년 전 한반도 사람들이 오늘날의 우리처럼 옥을 가장 아끼는 장신구로 몸에 두르고 다녔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삼국시대에는 곡옥, 관옥, 구옥 등 다양한 형태의 옥 공예품이 제작됐으며, 오늘날에도 친숙한 비취색 경옥과 연옥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진우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삼국시대에는 수정옥과 홍옥수, 유리구슬이 널리 활용됐고, 비취색을 띠는 경옥과 연옥으로 굽은옥도 활발하게 제작됐다"고 설명했다. 신라 천마총, 금관총, 서봉총에서는 비취색 곡옥이 다수 출토됐으며, 백제 무령왕릉에서는 호박으로 만든 관옥과 조옥이 발견됐다. 홍옥수와 유리 재료는 해상 실크로드를 통해 동남아시아에서 유입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왕실과 사찰을 중심으로 옥 장식품이 사용됐고, 조선시대에는 옥책, 어보, 면류관, 패옥 등 왕실 의례와 궁중 문화 전반으로 활용 범위가 크게 확대됐다. 경공장 소속 장인들이 전문적으로 옥공예를 제작할 정도로 관련 기술도 한 단계 도약했다.
이 전통 기술은 오늘날 '옥장'이라는 이름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채석부터 디자인, 성형, 세부 조각, 연마와 광택 작업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뛰어난 기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1996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으며, 올해 5월 31일 기준으로 장주원, 김영희 보유자와 장석 전승교육사가 그 맥을 잇고 있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확산되는 '옥코어' 열풍은 단순한 복고 패션의 유행을 넘어, 수천 년 동안 한반도 사람들의 삶과 함께해 온 옥 문화가 현대적인 감각과 만나 새로운 방식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뷔의 손가락 위에서 빛나던 옥반지 한 알이 실은 5000년의 시간을 품고 있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