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지역의 한 30대 경찰관이 직속 상급자와 관련한 내용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경찰 조직 내 갑질 문화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거세게 일고 있다.

지난 17일 수도권 소재 한 경찰서에 근무하던 30대 경찰관이 자택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인은 세상을 떠나기 전 유서를 남겼으며, 그 안에는 직속 상급자인 A경정에 대한 절절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24일 SBS가 단독으로 공개한 고인의 유서에는 "저는 과장님(A경정) 때문에 힘든 것밖에 없습니다"라는 문장이 또렷하게 적혀 있었다. 유서 곳곳에는 눈물이 떨어진 듯 번진 자국이 남아 있어 고인이 얼마나 극심한 고통과 절망 속에서 이 글을 써 내려갔는지를 짐작하게 했다.

유족들은 A경정이 부임한 이후부터 고인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고 증언했다. 유족은 "과장이 오고 나서부터 고인으로부터 전화가 자주 왔다"며 "너무 깐깐하고 결벽증이 있는 사람 같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전했다. 고인이 A경정과 함께 일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석 달 전의 일이었다.

유족에 따르면 갑질의 양상은 다양하고 반복적이었다. A경정이 에어컨 청소 관리 업무를 지시하면서 고인은 쉬어야 할 휴일에도 어김없이 출근해야 했다. 이뿐만 아니라 잡초를 뽑고 화단을 정리하는 업무에까지 동원되는 등 본연의 경찰 업무와는 동떨어진 불합리한 지시가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것이 유족의 주장이다.

고인은 생전에 "본인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는 자기 비하적인 말을 자주 입에 올렸으며 "아침이 두려워서 잠이 잘 오지 않는다"는 말도 반복했다고 유족은 분통을 터뜨리며 전했다. 직장 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고인의 정신적 상태가 얼마나 한계에 내몰려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한편 A경정은 고인의 빈소를 직접 찾아와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사과와 함께 "업무를 꼼꼼하게 챙기려 했을 뿐"이라는 취지의 해명을 덧붙인 것으로 알려져 유족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소속 경찰서 측도 "에어컨 청소는 업체 일정 때문에 불가피하게 주말에 이루어졌고, 화단 정리 업무는 고인 혼자가 아닌 다른 직원들도 함께 참여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 사건과 관련해 전국경찰직장협의회는 강도 높은 성명을 발표하며 진상 규명을 강력히 촉구했다. 협의회는 "결혼 1주년을 불과 며칠 앞두고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렵다고 절규했던 고인의 말은 우리 경찰 구성원 모두에게 크나큰 충격과 깊은 아픔을 안겨줬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고인의 죽음에 얽힌 진실이 단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하며, 조직 내 갑질과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는 어떠한 예외도 봐줌도 없이 엄정한 조사와 철저한 책임 규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지난 19일 A경정을 즉각 대기발령 조치하고 정식 감찰에 착수했다. 현재 A경정이 고인을 상대로 갑질이나 부당한 언행을 행사한 구체적인 정황이 있는지를 면밀히 파악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이와 별개로 고인이 생전에 근무했던 경찰서에서도 수사 차원에서 고인의 휴대전화를 포렌식 분석하는 등 정확한 사망 경위를 규명하기 위한 절차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한 젊은 경찰관의 안타까운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하루빨리 밝혀지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