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D램 제조사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하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기존 메모리 반도체 강자를 추격하고 있다. CXMT는 중국 내수 수요와 대규모 설비투자를 바탕으로 외형을 키워왔다는 분석을 받는다. 그러나 국내 법원에서는 CXMT에 한국 반도체 기술을 넘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직 삼성전자 임직원들에게 잇달아 실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CXMT는 지난 27일 상하이증권거래소의 기술주 중심 시장인 커촹반에 입성했다. 8.66위안이었던 공모가는 상장 첫날 49위안까지 치솟아 466%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종가를 기준으로 한 시가총액은 3조3000억위안에 가까워지면서 중국 본토 증시에 상장된 기업 가운데 단숨에 최대 규모로 올라섰다.
CXMT가 기업공개를 통해 확보한 자금은 약 579억위안이다. 이는 당초 투자설명서에 제시했던 295억위안과 비교해 약 2배에 달하는 규모다. 회사는 이번에 조달한 자금을 생산능력 확충과 D램 제조공정 고도화, 차세대 반도체 기술 연구개발 등에 사용할 방침이다.
시장 참가자들이 CXMT를 주목하는 데에는 빠르게 높아진 시장점유율이 영향을 미쳤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CXMT의 세계 D램 시장 점유율은 2025년 1분기 3%에서 올해 1분기 8%로 상승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이어 글로벌 4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이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에 투입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 생산 역량을 집중하는 동안 CXMT는 범용 D램 공급량을 늘렸다. 중국 내수시장과 정부 지원을 기반으로 생산 규모를 확대하면서 세계 메모리 시장의 기존 3강을 빠르게 뒤쫓고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CXMT 관련 기술유출 사건에 잇따른 실형 선고
CXMT는 국내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이름이 언급된 기업이다. 특히 법정에서 반도체 기술 유출 문제가 다뤄질 때 반복적으로 등장해왔다. CXMT가 비교적 짧은 기간 안에 기술 수준을 빠르게 높인 배경을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인 지난 4월에는 삼성전자의 D램 기술을 CXMT 측에 전달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임직원들이 이틀 연속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0-1부는 지난 4월23일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삼성전자 전 부장 김모 씨의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6년4개월과 벌금 2억원을 선고했다. 김 씨는 삼성전자가 보유한 국가핵심기술인 18나노 D램 공정 정보 등을 CXMT에 유출한 혐의로 기소됐다.
김 씨는 반도체 장비업체 유진테크의 증착장비 설계도면을 포함한 기술자료를 빼돌린 혐의도 받았다. 앞서 항소심 재판부는 김 씨에게 징역 6년과 벌금 2억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공범 사이에서 영업비밀을 전달한 행위 역시 별도의 영업비밀 침해로 볼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삼성전자의 영업비밀을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한 뒤 중국에서 사용한 행위로, 범죄의 성격이 매우 중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산업기술과 영업비밀, 국가핵심기술을 침해하는 범죄는 D램 개발에 투입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정상적인 거래 질서를 크게 훼손할 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하루 앞선 4월22일에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가 삼성전자 출신 연구원 전모 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전 씨는 삼성전자가 약 1조6000억원을 들여 개발한 10나노대 D램 공정기술을 CXMT로 빼돌린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재판부는 외부로 유출된 기술이 국가핵심기술에 해당하고, 전 씨가 범행에 공모한 사실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해당 범죄로 기업뿐 아니라 대한민국에도 손해가 발생한 만큼 무거운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CXMT가 삼성전자 출신 핵심 인재들을 중심으로 각 공정 분야의 기술자를 채용했으며, 제품 개발 과정에서 SK하이닉스의 기술까지 확보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을 기반으로 CXMT가 2023년 중국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10나노대 D램 양산에 성공했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다. 검찰은 삼성전자의 매출 감소 규모를 기준으로 2024년까지 발생한 피해액을 약 5조원으로 계산했으며, 향후 국가 경제 전체에 미칠 손실은 수십조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했다.
대만은 ‘경제간첩죄’로 엄벌…한국의 대응은
한국경제인협회에 따르면 주요 경쟁국은 기술유출 범죄를 단순한 기업 간 갈등이 아니라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문제로 취급하고 있다.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과 경쟁하는 대만은 2022년 6월 시행한 국가안전법 개정을 통해 군사·정치 분야뿐 아니라 경제·산업 분야의 기술유출 행위도 간첩행위 범주에 포함했다. 국가핵심기술을 중국이나 홍콩, 마카오 등 해외 지역으로 빼돌릴 경우 5년 이상 12년 이하의 징역과 500만~1억 대만달러, 약 47억원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범행이 미수에 그쳐도 처벌하며, 국가핵심기술과 관련된 영업비밀을 대만 밖에서 허가 없이 사용하면 3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미국은 연방 양형기준에 따라 피해 금액을 반영해 범죄등급을 높이고, 이에 맞춰 형량도 대폭 상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기술유출 범죄는 원칙적으로 6등급에 해당해 징역 0~18개월이 적용되지만, 피해액 규모에 따라 최고 36등급까지 올라갈 수 있다. 이 경우 징역 188개월, 즉 15년8개월에서 최대 405개월인 33년9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다.
한경협은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한국에서 발생한 기술 국외유출 사건 1건당 평균 피해액인 약 2억3000만달러를 미국 연방 양형기준에 대입하면 32등급 범죄에 해당한다”며 “이에 따라 징역 121개월인 10년1개월에서 262개월인 21년10개월까지 선고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 역시 기술유출 범죄의 처벌 수준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관련 제도를 개편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기술침해범죄 양형기준을 높여 2024년 7월부터 국가핵심기술을 국외로 유출한 범죄에 최대 징역 18년까지 권고하고 있다. 산업기술의 국내 유출에 대한 최대 권고형량은 기존 징역 6년에서 9년으로 늘었고, 해외 유출의 경우에는 9년에서 15년으로 상향됐다. 국가핵심기술 유출 범죄의 벌금형 상한을 15억원에서 65억원으로 높이는 등 처벌 규정을 강화한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도 지난해 7월부터 시행 중이다.
그럼에도 산업계에서는 핵심기술을 해외로 빼돌리는 행위에 대한 처벌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 19일 공개한 ‘핵심기술 해외 유출 대응 관련 대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92.5%는 기술유출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매우 심각하다”는 응답은 62.6%였으며, 심각성에 대한 평가는 10점 만점 기준 평균 8.6점으로 나타났다.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처벌을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90.7%에 달했다. 현재 수준의 처벌을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은 5.3%, 오히려 완화해야 한다는 답변은 3.2%에 불과했다. 기술유출로 인해 가장 우려되는 피해로는 추격 국가와의 기술 격차가 좁혀지면서 국가 경쟁력이 약화되는 문제를 꼽은 응답이 53%로 가장 많았다. 이어 국가 안보와 공급망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응답이 19.5%, 시장점유율 하락에 따른 매출 감소가 16.4%로 뒤를 이었다.
하상우 경총 이사는 “국민 대부분이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을 개별 기업 차원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국가 경쟁력과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신속한 제도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